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
1956년 대한민국 정·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 | |||||||||||||||||||||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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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56년 대한민국 정·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은 제3대 대통령 및 제4대 부통령 선거를 위해 민주당의 정·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치러진 경선이었다.
후보자
[편집]구파는 신익희 전 민의원의장을, 신파는 장면 전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. 치열한 신경전 끝에 양 계파는 신익희를 대통령 후보, 장면을 부통령 후보로 하는 것으로 합의를 도출했다.[1] 처음엔 일부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근거로 추대가 예상됐으나, 민주당은 투표를 통해 두 후보를 뽑을 것을 선언하였다. 그러나 구파 측 부통령 후보로 나왔던 조병옥 전 내무장관이 합의 발표 직후 사퇴하는 등, 투표는 형식적인 것이었다. 역시 부통령 지명전에 나섰던 김준연은 끝내 사퇴하지 않았다.
전당대회
[편집]민주당은 3월 28일 전당대회를 갖고 무기명 비밀 투표로 정·부통령 후보를 각각 선출하였다. 다만 입후보제를 도입하지 않아 대의원이 아무에게나 투표할 수 있었다.[2] 그래서 당초 부통령 지명전에 출마를 선언했다가 26일 철회한 조병옥 등도 표를 받았다.
대통령 후보 경선
[편집]득표순위 | 이름 | 득표수 | 득표율 | 비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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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 | 신익희 | 954 | 97.5% | 대통령 후보 |
2 | 조병옥 | 9 | 0.9% | |
총투표수 | 978 |
부통령 후보 경선
[편집]득표순위 | 이름 | 득표수 | 득표율 | 비고 |
---|---|---|---|---|
1 | 장면 | 745 | 76.2% | 부통령 후보 |
2 | 김준연 | 207 | 21.2% | |
총투표수 | 978 |
경선 결과 대통령으론 신익희, 부통령으론 장면이 각각 지명됐다.[3]
각주
[편집]- ↑ 지면보기, 입력 1992 05 10 00:00 | 종합 3면 (1992년 5월 10일). “대권 경선사/DJ가 YS에 대역전승/70년 신민당”. 2019년 5월 6일에 확인함.
- ↑ “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”. 2019년 4월 2일에 확인함.
- ↑ “大統領(대통령)에申翼熙氏(신익희씨)”. 2019년 3월 4일에 확인함.
같이 보기
[편집]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 당내 경선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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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2대 | |
제3대 | |
3.15 | |
제5대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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